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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 쿠데타와 나

  • 저자 장태완<*>이콘<*>발행일 2024-01-31

  • 책소개
    “12·12는 계획된 쿠데타였다!”
    12·12 군사반란 당시 수경사령관이
    밝히는 그날의 생생한 진실

    12·12 군사반란을 끝까지 막으려 했던
    장태완 장군의 회고록 재출간!

    1979년 12월 12일, 10·26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으로 혼란했던 국정 속 자신들의 세력을 키워왔던 하나회가 쿠데타를 일으켰다. 하나회에 대한 여러 견제의 손길은 있었지만 결국 쿠데타는 일어나고 말았고, 전두환을 비롯한 수많은 군인들이 수도 서울로 진격했다. 당시 압도적으로 불리한 상황 속에서도 수경사령관이었던 장태완 장군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진압을 시도했으나, 결국 서울과 대한민국은 그들의 손에 넘어가고 말았다.

    “속죄하는 마음으로 나는 지난 세월을 침묵으로 일관해 왔다.” 장태완 장군의 회고록, 『12·12 쿠데타와 나』는 이 문장으로 시작한다. 장태완 장군은 쿠데타를 막기 위해 죽음도 불사했지만, 결과적으로 진압 작전이 실패한 것에 대해 오랫동안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동안 장태완 장군의 이야기는 여러 매체에서 다뤄진 적은 있으나, 그의 실제 삶과 정신에 대해서는 많이 담지 못했다. 이 책은 1993년 출간되었다가 절판된 '12,12 쿠데타와 나'를 재출간한 도서로, 독자의 가독성을 위해 맞춤법 수정과 교열 작업을 거쳤다. 다만, 저자의 의도를 그대로 전달하고자 하는 부분의 문장들은 원문을 그대로 사용했다.
    목차
    1장. 쿠데타라는 비극의 씨앗
    6·25 한국전쟁부터 시작된 군인의 삶
    군 내 사조직 하나회의 등장
    윤필용 사건으로 드러난 군의 병폐
    박 대통령의 비호하에 커 나간 하나회
    무소불위의 권력, 차지철과 전두환의 등장
    이병형, 김복동 그리고 나

    2장. 10·26 이후 드러난 야욕의 발톱
    10·26 박 대통령 시해사건 발생
    정승화 참모총장 ‘2급 비상사태’ 하달
    군인의 정치 참여를 경계했던 정 총장
    얼떨결에 맡게 된 수경사령관 자리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보내온 김장값
    작전참모 박 대령의 장군 진급 탈락

    3장. 비운의 12·12 군사반란
    연희동 비밀 요정에서의 주연
    미뤄지는 최 대통령의 연행 재가
    재가 없이 행해진 정 총장 불법 연행
    치밀하게 계획한 정 총장 납치 작전
    육본 B-2 벙커 속 다급한 상황
    적으로 변한 전우들
    행방 묘연했던 국방장관의 등장

    4장. 고립무원 속 수경사령관
    수경사로 옮겨진 육본 지휘부
    경복궁과 보안사를 목표로 출동 준비
    반란군 측 제1공수여단 병력 출동
    진압군 측 야포단 서울 진입 실패
    반란군 측 정병주 특전사령관 체포
    심야에 열린 육본 참모회의

    5장. 12·12 군사반란 그 이후
    반란군 측 제1공수여단 서울 진입
    반란군 측 육본·국방부 완전 장악
    노 국방장관, 의문의 ‘상황 중지’ 명령
    믿었던 부하 손에 서빙고로 압송
    쿠데타 군부의 군권 장악과 수뇌부 물갈이
    12·12 군사반란의 작전 평가
    12·12 군사반란의 진상규명과 단죄의 당위성
    12·12 군사반란의 교훈
    12·12 군사반란의 법률적 검토

    6장. 시련의 감방 생활 2개월
    보안사 서빙고 특수수사대
    죽음을 각오한 심문 조사
    수사관의 끈질긴 배후 수사
    처음으로 들은 가족들의 소식
    전두환과의 만남 그리고 석방

    7장. 아들을 가슴에 묻고
    가택 연금과 아버님의 별세
    난데없이 떠난 동해안 격전지 순례
    가난하지만 단란했던 우리 가족
    외아들의 가출과 죽음
    아들을 가슴에 묻고
    외동딸 현리의 결혼
    나를 괴롭히는 심근경색증
    생사의 기로 앞에서 남기는 증언

    부록
    장태완 장군 자력표
    12·12 군사반란 시차적 상황

    “12·12는 계획된 쿠데타였다!”
    12·12 당시 수경사령관이 밝히는 그날의 생생한 진실
    저자소개
    저자 : 장태완
    1931년 9월 13일 경상북도 칠곡군 인동면 신동에서 태어났다. 대구상고를 졸업한 후 1950년에 육군 소위로 임관했다. 이후 제20사단 본부사령, 수도사단 작전참모, 육군본부 군사연구실 실장 등을 맡다가 1979년 11월 16일부로 수도경비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그리고 1979년 12월 12일 ‘12,12 군사반란’의 진압을 시도했지만 다음날 새벽 무장해제 당하고 연행되었다.
    이후 두 달간의 조사를 받고 풀려났지만, 가택연금 및 강제예편을 당했다. 그리고 이 충격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부친과 외동아들을 잃는 비극을 겪어야 했다.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상황이었지만, 가족들의 권유로 조그만 회사의 사장 자리를 맡으며 슬픔을 이겨내려 했다.
    그리고 1993년 ‘12,12 쿠데타 진상조사위’에 공개 증인으로 나서며 다시 조국을 위해 헌신하기 시작했다. 2000년 3월 새천년민주당에 입당하며 정계에 입문하며 민주당 고문직을 맡기도 했다. 이후 2010년 7월 폐암으로 생을 마감했다.

    엮음 : 이원복
    황해도 연백 출생.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던 중 6.25전쟁이 발발하여 학도병으로 지원했다. KLO부대원으로 차출되어 황해도 연백 일대를 중심으로 유격대로 활동했고, 전후 참전 공로를 인정받아 1954년 2월 육군 소위로 임관했다. 군 복무 당시에는 여러 지휘관 및 부대로부터 정훈 업무에서 두각을 드러낸 것을 인정받았다. 이후 중령으로 진급하여 1976년까지 근무하였다. 전역 이후에도 육군의 정훈에 크게 기여했다. 진중문고로 선정된 『세계 안보일일대사』 『한국전쟁사 10권』등 다수의 책을 집필했으며 강원도 문화상을 수상했다.
    출판사서평
    6·25 한국전쟁부터 시작된 군인의 삶
    하지만 막을 수 없었던 비극

    장태완 장군은 6·25 한국전쟁 당시 조국을 위해 몸을 바치던 수많은 청년 중 한 명이었다. 대구상업학교에 재학 중이었던 장태완은 육군종합학교 제11기로 입교했고, 단기 사관 교육을 받은 뒤 쉴 틈 없이 전선을 오가며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호국 용사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또한 장태완은 육군보병학교 전술학 교관, 존경하는 한신 장군 부대의 검열단장 등을 거치며 장군으로 진급하기도 했는데, 이는 6·25 한국전쟁 3년 동안 임관한 장교 3만 명 중 최초였다.

    이처럼 장태완 장군은 조국을 위해 헌신한 한 명의 군인이자,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한 명의 국민이었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일명 ‘정치군인’이라 불리며 뒤에서 자신들의 이익만을 챙기는 이들도 있었다. 특히 1961년 5·16 직후 자신의 기반이 될 수 있는 군 내부 사조직 ‘하나회’를 만든 전두환이 바로 그런 인물의 전형이다. 전두환과 하나회는 매우 은밀하고 치밀하게 자기들끼리 주요 보직을 차지하며 권력을 키워 나갔으며, 장태완 장군은 회고록을 통해 그 과정을 매우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불충자 유구무언의 속죄하는 마음으로
    나는 지난 13년간의 세월을 침묵으로 일관해 왔다”

    1979년 10·26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 이후, 하나회는 본격적으로 쿠데타를 준비했다. 청와대 경호실의 행정차장보를 거쳐 작전차장보의 자리에 입성한 전두환은 차지철과 함께 권세를 더욱 키워 나갔고, 12월 12일에 맞춰 치밀하게 계획을 만들어갔다. 그리고 이제 막 수도경비사령관으로 부임한 장태완 장군도 결국 그 농단에 당하고 말았다. 12월 12일, 장태완 장군은 비밀스러운 식사 자리에 초대받았으나, 알고 보니 그것은 수경사령관이었던 장태완 장군을 묶어두기 위한 함정이었으며, 조치를 취하러 뛰어나갔을 때는 이미 전두환과 하나회 세력이 수도 서울로 진격하고 있었다.

    부임한 지 한 달도 안 되었지만, 장태완 장군은 수경사령관으로서 12·12 군사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취할 수 있는 모든 연락을 취했으며, 반란군 측 군인들을 설득하기도 했다. 하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반란군이 육본과 국방부를 완전히 장악했고 장태완 장군은 국가가 무너지는 비극을 바라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후 장태완 장군은 서빙고로 압송되어 감방 생활을 보냈다. 그리고 석방 이후에도 오랫동안 쿠데타를 막지 못한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며 살아왔다는 것을 회고록을 통해 밝히고 있다. 그러나 그는 절대 삶과 조국에 대한 의지를 포기하지 않았고, 1993년 ‘12,12 쿠데타 진상조사위’에 공개 증인으로 나서며 다시 조국을 위해 헌신했다.

    장태완 장군은『12,12 쿠데타와 나』를 통해 다시는 12,12 군사반란과 같은 불행한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를 바랐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비극을 바로 눈앞에서 목격하고, 누구보다 크게 절망했던 이의 목소리로 재현한 그날의 진실은, 대한민국에게 아주 중요한 역사적 지침이 되어줄 것이다.

    이 책을 읽어야 할 사람들
    1. ‘12·12 군사반란’에 관심 있는 사람들
    2. 대한민국 역사에 관심 있는 사람들
    3. 정치에 관심 있는 사람들
    4. 장태완 장군에 대해 알고 싶은 사람들
    5. 하나회에 대해 알고 싶은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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